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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손으로 쓰시나요?

매년 연말이나 새해 초가 되면 항상 새로 나온 다이어리를 구경하고 사곤 하는데요. 올해는 어째 다이어리를 안 샀어요. 어플로 일정을 관리하고 있기도 하고 2024년 연말이 워낙 뒤숭숭해서 그런 것 같아요. 어제 잠깐 교보문고에 갈 일이 있었는데 다이어리 섹션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하나 골라서 사왔어요. 안녕하냐는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러운 요즘이지만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적어가며 일상을 살아갈 힘을 쌓아가야겠어요. 🎈[Opinion] 다이어리 써야 하니까 하루 더 살아야지 다꾸를 하면서 발견한 일상의 변화 언제나 한 박자 늦게 유행에 편승하곤 했지만, 적어도 '다이어리 꾸미기(이하 다꾸)'와는 평생 연이 없을 것이라 단언하던 때가 있었다. 다이어리를 근면성실함의 상징이자 표창이라고 여기던 시기이기도 했다. 구입한 후 머지 않아 책꽂이를 채워두기 위한 용도로 전락하는 다이어리를 꾸민다니. 그때는 다꾸가 대단한 사치라고 생각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친구에게 다이어리를 선물받은 후 함께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가는 기막힌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여태까지 다이어리를 쓰고 꾸미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연말 분위기에 취한 상황에서 코엑스에 입성해 목격한 온갖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는 오너먼트처럼 빛났다. 다이어리라는 트리를 꾸미기 위해 준비된 백화점이라 불러도 되는 수준이었다.   코엑스를 빠져나올 즈음에는 오래 걸은 발이 욱신거렸다. 그 길로 A5 크기의 두툼한 양지사 다이어리와 다이어리만큼 무거운 스티커, 엽서, 마스킹 테이프 더미를 든 채 집에 가 다이어리를 썼다. 다이어리를 제대로 써본 적도 없으면서 꾸미기까지 함께 시작한 이래로 1년이 넘도록 꾸준히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충동적으로 다이어리 꾸미기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습관도 기를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는 이유는 순전히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즐거워서다. 1차원적이면서 때로는 조금 심심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한 자 더, 한 페이지 더 쓰도록 부추긴다. 이 외에도 다꾸를 통해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던 적이 수 차례 있었다. 🌹지쳤던 하루, 스티커가 반창고가 될 때 사람은 일기를 쓸 때도 거짓말을 한다지만, 혼자 보는 다이어리나 일기에는 한없이 솔직해지고 싶은 충동을 누구나 느낀다. 격한 감정에 휩싸일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를 배출하고 싶어진다. 특히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말이든, 글이든 어떻게든 하루를 완전히 흘려보내려 애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어쨌든 다이어리를 쓰기 위해 지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는다. 다꾸를 하기 전에도 약간의 예열이 필요하다. 한정된 공간 안에 적을 수 있는 텍스트의 양과 스티커의 크기를 가늠하며 하루를 천천히 돌아보는 작업이다. 이는 사색과 가까운데, 다꾸를 위해 다분히 계산적으로 다이어리에 옮길 일을 솎아내도록 해준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반성할 일과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는 속상한 감정을 분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자꾸 되살아나는 감정을 견디지 못해 다이어리를 쓰는 걸 미뤘는데, 오히려 이렇게 다이어리 쓰기를 미루면서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힘들었다는 담백한 고백 옆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지난 일들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티커가 이미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 위에 덮는 반창고처럼 보여서일까?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자기 위안에 불과한, 맘에 쏙 드는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계속하는 건 이런 재미를 끊을 수 없어서다. 🌹정리정돈으로, 인내의 미덕을 배울 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자꾸 발생하거나 평소보다 배로 바빠지는 시기가 있다. 이런 시기가 눈 깜짝할 새 지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통 청소를 한다. 이때, 이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더러운 방을 돌아보며 자신이 몹시 게으르게 느껴져 자책하기 쉽다. 차일피일 미루다 산처럼 쌓인 집안일을 보면 힘이 빠져 방째 갖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다꾸를 하는 게 여기에 실질적으로 손을 보태는 일은 물론 아니다. 다만 다꾸를 하면서 시간을 촘촘하게 쓰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좋은 다꾸에는 시간과 정성이 요구되지만, 정리 없이 무작정 문구,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를 늘어놓고 시작하면 복잡하고 피곤한 일로 느껴지기 쉽다. 평소에 효율성을 위해 용도와 편의에 맞춰 꾸밀거리를 분류해놓으면 쾌적한 환경에서 다꾸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다꾸를 하면서, 자신이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도움을 받을 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내친 김에' 해버리는 일들도 많아졌다. 다꾸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라는 걸 상기하며 시간이 없다고 미루었던 독서 같은 취미도 일상에 다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다꾸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생각하면서 이런 감각을 다른 영역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실패해보면서, 해보지 못할 이유는 없음을 깨달을 때 실패가 두려워 시작의 문턱에도 서보지 못한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챌린저(Challnger)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실패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에도 몸이 떨린다. 실패를 막연히 두려워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잦은 실패의 고배를 마신 사람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다꾸도 마찬가지다. 다꾸를 디자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이보다 어려울 수가 없다. 다꾸는 톤앤매너를 고려해 스티커를 고르고, 큰 스티커 옆에 중간 크기의 스티커, 그 옆에 그보다 작은 스티커, 그 옆에 다시 좀 더 큰 스티커를 붙이고 좁은 틈에 색을 바꿔가며 열심히 글을 쓰면서도 단 몇 번만 시도할 수 있는 디자인 작업이다. 다이어리를 쓰다 실수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 해 다이어리는 끝'이라는 답이 큰 웃음을 사 인터넷 밈이 되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꾸를 멈출 순 없다. 실패했다고 그 순간부로 그만두면 어쩌다 가끔 떠오르는 번뜩이는 레이아웃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꾸를 한 장으로 완성하면 도중에 그만둔 것보다 디테일이 더해졌기 때문에 허술한 부분마저 의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속 실패하면 쌓이는 실패작마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실패라는 결과로 향하더라도, 때로는 그러한 결과를 과정 중 아주 확실하게 예지할 수 있더라도, 완성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에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73507&code=netfu_64709_77360&d_code=20201218144147_2490&ds_code=#link_guide_netfu_64709_77360 사진 출처: 아트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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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의 크루
    익명의 크루
    엄마

    아기 낳기 전에는 매일 다이어리 쓰고, 나름 다꾸도 하고 그랬었는데, 아기 돌보느라 요즘은 아예 다이어리 펼쳐보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새해에는 다시 다이어리 써볼까 싶네요! 좋은 글 나눠주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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